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무스타르시드 (문단 편집) == 패배와 죽음 == [[파일:Anonymous_-_Death_of_the_Abbasid_Caliph,_Al-Mustarshid_bi-llah,_Assassinated_During_the_Reign_of_Sultan_Mas’ud,_-_1965.51.6_-_Yale_University_Art_Gallery.jpg|width=500]] 알 무스타르시드의 죽음 전투에 익숙했던 마수드는 그러지 못했던 알 무스타르시드가 [[자그로스 산맥]]을 지나 하마단 방면의 긴 여정을 지속하도록 방관하였다. 그리고 칼리파 군대가 [[케르만샤]]에 당도하자 마침내 출정하여 대치하였다. 평지에 익숙하던 칼리파 군대는 산지를 지나며 약화된 상태였다. 그러던 6월 22일, 케르만샤에서 알 무스타르시드는 작전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전면에는 대규모의 셀주크 기병대, 후방에는 자그로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사면초가의 형국에서 칼리파 측에게 필사적인 전투 외의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틀 후 벌어진 다이마르그 전투는 마수드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되었다. 자신의 군대에게 버림받은 알 무스타르시드는 포로가 되어 전쟁 배상금 지불을 요구받았으며 칼리파 군대는 해산되었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바그다드의 궁전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면받았다. 승리 후 마수드는 칼리파를 대동한 채로 하마단에 개선하였다. 마수드는 배신의 대가로 베그 아바를 바그다드 총독으로 봉하였고, 이에 시민들이 반발하자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성벽 일부를 허물었다. 이후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평정하던 마수드는 대술탄이자 칼리파의 장인이기도 했던 아흐마드 산자르로부터 두바이스를 넘길 것을 요구받았다. 이에 마수드가 침묵하자 산자르는 하마단에 군대를 보냈다. 그러던 1135년 8월 26일, 마수드는 돌연 알 무스타르시드의 폐위를 선언하고 그에게 아제르바이잔으로의 추방형을 내렸다. 따라서 하마단 외곽에서 떠날 채비를 하던 알 무스타르시드는 마침 산자르의 군대가 당도하자 재기를 노리며 그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하지만 그는 술탄이 부재한 틈에 자신의 막사에서 쿠란을 읽던 중 암살당하였다. 이는 압바스 칼리파를 혐오하던 [[아사신]] 요원의 범행으로 추정되나, 마수드가 이를 부추긴 것이라고도 한다. 어쨋거나 그의 사후 26세의 아들 알 라시드가 칼리파 위를 계승하였다.[* 마수드가 알 무스타르시드를 폐위할 때부터 알 라시드를 칼리파로 선언하긴 했으나 그의 죽음이 공식적인 칼리파위의 종결로 본다] [[분류:아바스 칼리파]][[분류:1092년 출생]][[분류:1135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